
특유의 엄숙함과 과도한 의미삽입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가볍고 경쾌함 - 은 커녕 꼿꼿이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아 정독해서 읽고 그 안에서 중대한 메시지라도 뽑아내지 못하면 은나노 스팀으로 지져죽일 것 같은 압박감이 싫어 국내작가의 소설은 멀리하고 있지만, 시대의 요구랄까.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거랄까. 이도저도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기 때문이랄까. 여튼 한국 소설들도 '가볍게 입고' 유쾌하게 즐기기. 에 돌입한 것 같아 반갑기가 서울역에 그지없다.
1.
커피.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는 상관없으니까 그 뒤의 '마녀'라는 단어에 집중해달라고 호소하는 아이디 '커피마녀' 세린. 팔팔 끓는 가마솥에서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는 까만 눈동자를 동경하는 그녀가 가지고 싶은 것은 자기 이름에 걸맞는 커피드래곤.
가질 수 없는 것에 집착하느니 목에 걸린 크리스털 목걸이나 신경 쓰는 것이 옳다고 믿는 연우. 결국엔 신파가 되어버릴 로맨스도, 허울뿐인 사랑도, 가질 수 없으니 존재하지도 않는 보물섬이나 마찬가지.
주인공인 이 둘의 직업은 기인들을 찾아내 카메라 앞에 세우는 방송작가들이다. 한쪽 발은 장풍도사와 최면술사들의 신비의 세계에, 나머지 한쪽 발은 지각했다고 윽박지르는 부장이 존재하는 현실에 담그고 있는 인물들이다.
구조는 이렇게 된다.
마녀와 커피.
기인과 부장.
세린과 연우.
비현실과 현실.
비현실과 현실.
비현실과 현실.
2.
마녀.
특집방송의 소재로 '여의주'를 찾겠다고 나선 세린과 연우가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연우의 옛 연인이었던 성민과 얽히면서 숨겨져 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줄거리.
우유가 듬뿍 들어간 녹차라떼처럼 달착지근하고 깔끔한 이야기라 치밀한 구성이나 숨겨진 메시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일상 속에 판타지라고 쓰고 뜨거운 감동이라 읽는다. 라는 반전도 없다. 경쾌한 아가씨의 발랄한 이야기이고, 상처받은 아가씨의 따뜻한 이야기이고, 고지식한 남자의 정당한 이야기다.
구조 속 구조는 이렇게 된다.
상처투성이 가족사를 지닌
현실이 싫어 비현실에 매달리는 세린.
납득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별에 상처받고 철저하고 구체적인
현실만 인정하게 되는 연우.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가지고 있던 현실은 버리고 비현실에 집착하는
역설적인 인물 성민.
3.
여의주.
그럴듯한 복선도 전개도 없이 그저 '성민이 서점에서 구입해 연우에게 주었던 책'을 쫒아 찾아간 호흡수련원에서 여의주의 단서를 찾으며, 그 수련원에 있는 사람들이 독심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묘사에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으며 (그게 사실이면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기인이잖아!) 말랑말랑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 문장은 딱딱하고 가끔 거칠어지기까지 한다. 무협지에나 나올 것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인물들이 나오고 감정변화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는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다. 제목만 보고 중세 유럽풍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리라 생각했다면 당신은 낚였다. '커피마녀'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에 일본풍의 재기발랄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기대했더라도 당신은 낚였다. 간혹 리듬이 뚝뚝 끊기는 듯한 문장과 단어선택이 몰입을 방해하고, 초반 주도적이고 톡톡 튀는 태도가 매력적이었던 세린도 중반을 거쳐 후반으로 갈수록 기어이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무뚝뚝한 남자와 티격태격하며 정이 쌓이는' 흔해빠진 캐릭터로 변해간다. 굳이 오른쪽에 곁들여 놓은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수련법의 한문 명칭은 과거 엄숙주의 한국문학의 구태의연함을 그대로 답습한다. 여의주(如意珠)만 있을 뿐, 커피마녀와 레시피는 어디에도 없다.
유쾌한 캐릭터의 유쾌한 이야기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별안간 세린의 신파적인 가정사가 등장하질 않나, 연우가 '서릿발처럼' 차가워진 이유가 고작 '수동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과거의 이별'이라고만 설명되질 않나, 별 의미도 없는 대화 한마디에 '충격을 받았다' 라든가, '뒤통수를 세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라든가 하는 표현들은 눈에 거슬리는 수준을 넘어 강정이입을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어서 불쾌한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소설 전반에 걸쳐

라는 태도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 내용전개와는 크게 관계없는 - 도방의 수련법에 대한 과도한 설명이 상대적으로 거추장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4.
레시피.
세린이라는 여자를 통해 현대인들이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요받는 판타지적 몽상에 대해 직설적이고 맹랑하게 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당신들도 원하면 행동하라고 핀잔을 주고 있다는 것은, 소설속 내용이 전하는 메시지와 소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 다시말해 콘텐츠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대가를 주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 '할리스, 커피빈, 스타벅스가 소비의 미덕을 찬양하는' - 물질기호의 세상에서 판타지도 제외하지는 말라고 제안하고 있으며, 허망하기는 하지만 '수련원을 방문해 도를 닦고, 호흡을 수련한다' 라는 나름의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중반 일관적이지 못한 설정과 캐릭터도 후반으로 갈수록 정리가 되는 편이고, 화자의 성별에 따라 말투나 행동의 묘사에도 변화가 자연스럽다. 가볍고 경쾌하다는 것이 현대문학의 핵심 미덕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다지 깊은 설명이나 묘사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것도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별다른 선택이 주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맺은 결론이라면 비록 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만으로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라면 실망할 일은 적다.
커피전문점에 들러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하는 마음으로 고르고 읽어 내려가면
그 나름대로의 만족은 얻을 수 있는 책.
하지만.
리얼리티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는 이 책은
판타지라는 옷을 입은 건조한 연애소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연애소설의 형식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제목과 내용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소설은
틀림없이.
반갑지는 않다.
5.
한줄 요약.
예쁜 유리잔에 담겨있길래 콜란줄 알고 들이켰더니 어잌후 이것은 총명탕.
태그 : 렛츠리뷰, 커피마녀의여의주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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